강의자료를 파일로 주지 않기로 했다

PDF로 돌리던 강의자료를 웹 전용으로 바꾸면서 정리한 것들. 무엇이 실제로 통제 가능하고 무엇이 애초에 불가능한지.

강의를 나가면 거의 매번 "자료 파일로 주세요"라는 요청을 받는다. 보내주고 나면 그 자료가 어디까지 가는지는 알 수 없다. 사내에서 그대로 재사용되기도 하고, 다른 강사의 슬라이드에 섞여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파일 배포를 그만두고 웹에서만 열람하게 바꿨다. 그 과정에서 정리된 것들.

막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먼저 분명히 해둘 것: 다운로드는 막을 수 없다. 웹페이지로 만들어도 HTML은 결국 브라우저로 내려간다. 우클릭 방지나 텍스트 선택 방지를 걸어봐야 개발자 도구 한 번이면 끝이고, 애초에 화면 캡처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못 막는다.

그런 장치들은 효과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해롭다. 키보드로 탐색하는 사람, 스크린리더를 쓰는 사람의 접근을 같이 막는다. 얻는 것 없이 잃기만 한다.

실제로 통제 가능한 건 세 가지다.

1. 접근 기간

이게 가장 크다. 링크에 만료를 걸어두면 강의가 끝나고 일정 기간 뒤에 자료가 닫힌다. 파일은 한 번 나가면 영원히 남지만, 링크는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

기관 입장에서도 불합리한 요구가 아니다. "수강 기간 동안 열람 가능"은 온라인 교육에서 이미 익숙한 조건이다.

2. 누가 열었는지 드러나게 하기

페이지에 열람 기관명을 옅게 깔아둔다. 캡처해서 돌려도 출처가 같이 간다.

기술적으로 유출을 막는 장치가 아니라 유출할 마음을 줄이는 장치다. 실제로 이쪽이 우클릭 방지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 그리고 접근성을 해치지 않는다.

3. 애초에 무엇을 자료에 넣는가

결국 이게 본질이다. 기술로 지키는 게 아니라 편집으로 지킨다.

자료에는 왜 배워야 하는지와 무엇을 배우는지까지만 넣는다. 개념, 배경, 사례, 목차. 검색하면 나오는 것들이라 유출돼도 손해가 크지 않다.

빼는 건 어떻게다. 그대로 따라 하면 결과가 나오는 단계별 절차, 프롬프트 전문, 설정값, 자체 제작한 템플릿 원본. 이건 라이브에서만 보여준다.

자료만 보고 "이거면 되겠네" 소리가 나오지 않아야 강의에 가치가 남는다. 거꾸로 말하면, 자료만으로 충분한 강의였다면 그건 자료 문제가 아니라 강의 문제다.

부수 효과

웹으로 옮기고 나서 예상 못 한 이점이 몇 개 있었다.

  • 수정이 즉시 반영된다. 오타나 틀린 수치를 발견해도 이미 배포한 PDF는 못 고친다. 웹은 고치면 끝이다.
  • 항상 최신 버전만 존재한다. "작년에 받은 자료"가 돌아다니지 않는다.
  • 어디를 오래 봤는지 알 수 있다. 어떤 주제가 반응이 좋은지 데이터가 쌓인다.

제안서에 미리 못 박기

가장 중요한 건 이걸 사전에 합의하는 것이다. 강의 끝나고 자료 요청이 들어온 다음에 거절하면 껄끄럽다. 제안서 단계에서 한 줄 넣어두면 요청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강의자료는 사전 배포하지 않으며, 전용 웹페이지를 통해 수강 기간 동안만 열람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이 조건으로 거절당한 적은 없다.